[도서] 빨강 머리 앤, [전시] 내 이름은 빨강 머리 앤 책사랑

8월 2일 관람했던 '내 이름은 빨강 머리 앤' 전시(갤러리아 포레)의 늦은 후기.
책을 다시 한번 읽고 후기를 적으려고 미뤄뒀다.
추석 연휴 첫날 기념으로 완독!
옛날 생각하며 키득키득 웃으며, 찔끔찔끔 울며 행복하게 읽었다~~^^  좋은 소설은 그렇다.




친근한 TV 애니메이션 원화 속 앤의 스틸컷들이 정겹게 삽입된 예쁜 책이다.




《빨강 머리 앤》의 배경으로 추정되는 1870년대와 1880년대는 소설의 무대인 프린스에드워드 섬이 영국의 식민지에서 영국령 캐나다 자치연방으로 독립된 직후였다.
세계 곳곳에서 이민자들이 새로운 땅을 개척하겠다는 꿈을 안고 캐나다를 찾아왔고, 도시화와 산업화가 진행되어 건물에는 전깃불이 들어왔다.
그러나 아직 대부분의 사람들은 호롱불을 밝히는 시골 마을의 작은 집에 살았고, 캐나다로 유입된 이민자들 대부분은 빈민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차별받는 위치에 있던 이들이 바로 여성과 아이들이었다. 여성의 지위가 나아지고는 있었지만 아직 성인 여자에게 선거권이 없었던 것은 물론, 사회로 나아가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기회도 매우 제한적이었다. 여자아이들이 수학보다 살림과 바느질을 잘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던 시대였다.

이렇듯 여성이 정숙하고 순종적이기를 기대하는 시대에 소설은 여성이 사회적으로 자신을 실현할 수 있는 하나의 돌파구였다.






"이 세상엔 좋아할 것이 이렇게 많다는 게 너무 근사하지 않나요?"
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빨강머리 소녀, 앤 셜리는
1908년 출간된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빨강머리
앤(원제: Anne of Green Gables)>의 주인공이다.

몽고메리는 서른 살이 되던 1904년에 자신과 닮은 소녀 '앤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여러 출판사로부터 거절당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모국 캐나다가 아닌 미국에서 먼저 출간되었고, 그 즉시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그 뒷이야기를 담은 후속작 시리즈가 30여년에 걸쳐 이어졌다.

앤은 엉뚱한 상상력과 밝고 긍정적인 태도로 에이번리 사람들과 지내며 차츰 성숙해지는데, 그 사랑스러운 에너지는 시공간을 초월해
2019년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내 이름은 빨강머리 앤>전은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추억으로 남아있는 앤을 회화, 애니메이션, 대형 설치 작품, 음악 및 영상 등을 통해 새롭게 만나볼 수 있도록 한 체험전이다.

긍정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앤을 만나,
또 하루를 덕분에 즐겁고 흥미로운 일상으로 만들 수 있게 된다.




전시회 입구에 놓인 의자인 줄 알았는데
팜플렛이었다^^
한 장씩 떼어가는 재미를 주는데, 기발했다~~





몽고메리의 서재로 꾸며놓은 방


고아의 이야기 애니메이션.
3개 스크린의 내용이 다 달라서
욕심부려 다 보면 10분이 걸린다...
그래도 시간 내어 볼만하다. 의자도 여러 개가 놓여있어서 관람하기 편하다.


프롤로그 방을 지나
첫번째 주제 방은 <불쌍한 고아 소녀>

앤의 고아 시절 이야기를 통해 그 당시 캐나다의 아이들은 교육의 대상이라고 보기보다는 노동의 일원이었으며, 여성의 역할은 출산과 육아에 집중되어 있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그래서 앤처럼 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고 아이를 돌보는 일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더욱이 앤이 살던 곳처럼 시골에서는 학교가 멀었고 시설도 부족해 많은 아이들이 교육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도시 아이들 역시 노동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빨강머리 앤>이 집필되던 당시 캐나다에서는 한창 도시의 공장과 탄광에서 일하는 아동의 노동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었다.
20세기 서양의 문화와 산업은 주로 영국에서 미국을 거쳐 캐나다로 이동했다.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이 봉건주의가 자본주의로 바뀌면서 나라 안에서 자체적으로 일어난 것이었다면,
20세기 초 비교적 늦게 일어난 캐나다의 산업혁명은 영국과의 교역관계로 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아이들은 푼돈을 벌기 위해 학교 대신 공장과 탄광에
다녀야했는데 이런 아동 노동자 중에는 여덟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도 있었다고 한다.

캐나다의 아동 노동법은 <빨강머리 앤>이 출판되던 1908년에 만 14세 이하의 어린이는 노동할 수 없도록 제정되었다.






중간중간 배치된 이런 '쉼 공간' 적극 환영한다!!



영원한 친구. 다이애나.
동성의 영원한 친구란 진심으로 축복받은 존재이다.
수다와 속내 드러내기를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던 ... 동성 친구...






5번째 방은 가장 내 취향저격 ㅋㅋ
'빨강머리'


세계 인구의 1~2%를 차지하는 '빨강머리(red hair 혹은 ginger hair)'에 대한 서양에서의 편견과 이에 따른 콤플렉스는 상당하다.
'빨강머리'는 불같은 성격을 가지고 신랄한 말을 많이 한다는 정형성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성적으로
열정적이고 남들보다 생기가 넘치는 사람이라고 많이 인식되어 와서 실제 '빨강머리'인 사람들은 그 자체가 콤플렉스이자 스트레스로 작용한다고 한다.
'홍당무, 홍당무!'
길버트가 앤의 빨강머리를 놀리며 '홍당무 carrot'라고 칭하는 것은 단순히 소설 속에서 길버트가 생각해 낸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것이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마릴라와 매튜 뿐 아니라 사실상 에이번리의 모든 사람들이 앤의 성장과정에 큰 영향을 친다.
그 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여성 캐릭터들이다.
에이번리에 새로 부임한 목사의 아내, 앨런 부인과 학교에 새로 부임하는 스테이시 선생님은 처음부터 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녀의 롤모델이 되는 존재들이다.
마릴라의 이웃이자 동네의 마당발, 수다쟁이인 린드 부인은 앤과 크게 싸우며 악연으로 만난다.
그러나 린드 부인 특유의 인간성으로 관계를 회복하고, 앤은 여전히 잘 이해되지 않게나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도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조세핀 할머니는 다이애나의 고모할머니로 처음에는 무서운 존재처럼 보였지만, 앤의 매력을 발견하고서 나이 차이와 상관없이 허심탄회하게 좋은 친구 관계를 맺게 되는 인물이다.



앤과 마릴라의 식탁
"우린 젤리를 바른 닭고기와 차가운 혓바닥 고기를 대접할거야. 젤리도 빨간색과 노란색 두 종류고,
생크림과 레몬 파이, 체리 파이, 또 쿠키 세 종류, 과일 케이크, 그리고 목사님 드리려고 따로 남겨 놓은 마릴라 아주머니의 특기인 노란 자두 통조림, 그리고 파운드 케이크와 레이어 케이크, 아까 말한 비스킷,
또 새로 구운 빵과 묵은 빵 둘 다 준비했어.
목사님이 혹시 소화 불량이라 새로 구운 빵을 못 드실까 봐."





길버트의 존재는 참 특이하다.
앤의 남자친구는 물론 아니고, 투명인간 취급되다가 소설의 맨 마지막에 극적으로 '화해'하는
참 비중 낮은 배역임에도
모두가 '앤의 남친'으로 기억하니 말이다 ㅎ








8번째 방. <주체적인 여성>에서 상영되는 디지털 드로잉 애니메이션도 상당히 재기발랄했다.
I'm Just Me
mareykrap
2019
꼭 끝까지 감상하시라~~~


19세기 후반 캐나다의 여성 인권은
당시 우리가 알고 있는 유럽의 상황과 다르지 았다.
'매튜 아저씨. 린드 아주머니가 그러시는데요, 여자들도 투표를 할 수 있으면 나라가 더 좋은 쪽으로 발전할 게래요'
겨울의 어느 날 밤. 장작불이 활활 타오르는 난로 앞에서 앤은 매튜에게 말한다.
이런 대화에서 유추해 볼 수 있듯 20세기 초 궤나다
여성들은 투표권이 없었고 관공서에 취직할 수도 없었다.
그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는 여성의 존재 이유는 단 하나. '출산'
19세기 후반에 캐나다 여성위원회National Council of Women of Canadal 설립되었고 그 당시 일어난 여성운동은 여성은 '타고난 돌보는 사람caregivers'이라 여기며
여성의 사회참여가 많을수록 좋은 사회가 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캐나다 여성위원회는 이러한 시민의식을 여성들에게 홍보했으며 1916년 마니토바에서 여성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것을 시작으로 캐나다 여성들은 투표권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프랑스령이던 퀘벡에서는 1940년까지 여성들은 투표에 참여할 수 없었다.




루시 모드 몽고메리가 이 작품을 썼던 1900년대에는 여성이 대학에 진학해서 공부하고 글을 쓰고 직업을 갖는 모든 일이 쉽지 않았다.
그런 배경을 생각한다면, 이 작품에는 당시로써 파격적인 설정들이 제법 등장한다고 볼 수 있다.
결혼하지 않고 오빠와 사는 중년 여성 마릴라, 도시에서 혼자 살아가며 손녀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노년 여성 조세핀, 보수적인 마을에서 진보적 교육을 선보이는 스테이시 선생님, 교회의 룰을 조금씩 바꿔나가고자 하는 앨런 부인. 그리고 남자친구나 결혼에는 별로 관심 없이, 학업에 열정을 가지고 계속해서 자신만의 길을 걸어 나가려고 하는 주인공 앤까지.
소설의 결말에서 앤이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초록 지붕
집에 돌아온 것에 대해 꿈을 펼치지 못하고 결국 좌절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앤이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판단하고, 주체적인 선택들을 통해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는 모습의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런데 저 길은 왜 붉은 거예요?”
  “글쎄다. 모르겠구나.”
  “음, 저것도 언젠간 꼭 알아낼 거예요. 앞으로 알아야 할 온갖 것을 생각하면 신나지 않으세요? 그럼 살아 있다는 게 정말 즐겁게 느껴지거든요. 세상에는 흥미로운 일이 가득하잖아요. 만약 우리가 모르는 게 없이 다 알고 있다면 재미가 반으로 뚝 줄어버릴 거예요"



   “아주머니, 내일을 생각하면 기분 좋지 않나요? 내일은 아직 아무 실수도 저지르지 않은 새로운 날이잖아요.”
  “내 보증하마. 넌 내일도 실수를 수두룩이 저지를 거다. 너처럼 실수를 쫓아다니며 저지르는 아이는 처음 본다, 앤.”
  앤이 풀이 죽어 말했다.
  “맞아요. 저도 잘 알아요. 그래도 아주머니, 제게도 장점이 하나 있는데, 알고 계세요? 전 같은 실수는 두 번 저지르지 않아요.”
  “끊임없이 새로운 실수를 저지르니 좋은 점이 있어도 그게 그거구나.”
  “아, 모르세요, 아주머니? 한 사람이 저지를 수 있는 실수에는 분명 한계가 있어요. 제가 그 한계에 다다르면 제 실수도 끝나는 걸거예요"
 







소설의 끝에서 앤은 가진 능력을 마음껏 펼치며 원하는 목표를 향해 곧게 뻗은 길을 걸어 승승장구하지 않는다.
그렇게 뻗어 있을 것만 같던 길 위에서 원대한 포부를 잠시 접고 무엇이 나올지 모를 길모퉁이로 접어든다. 앤의 발목을 잡은 것은 어쩌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소중한 것을 지키고자 꿈을 보류하는 아름다운 희생정신이었을 수도 있고, 가족 간의 사랑과 여성의 희생에서 소박한 행복을 찾는 시대적 압박이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앤이 보여준 가치는 현재에도 의미가 있다. 예기치 못한 그 길에 잔잔한 행복의 꽃이 피어나리라는 긍정은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의 삶을 다시 일어서게 만드는 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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