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우리 강산을 그리다 취미와 생활

2019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4시간을 쉬면서 관람했다~^^
(중간에 앉을 곳들도 있다)
관람료 5천냥으로 참 좋은 피서를 누린다 ㅎㅎㅎ
세금으로 이런 멋진 공간을 운영해주는 멋진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을 설치하면 특별전시 음성안내를 무료로 들을 수 있다. '사전공부'하고 가면 좋을듯!!
괜히 3천냥에 오디오가이드 대여하지 마시길...




주로  금강산과 관동지방 실경산수화가 많지만
지역별 구색도 맞추려고 노력을 많이 한 전시회다^^
강세황의 부안유람도권과 이한철의 석파정도는 멀리 미국에서 이번 전시를 위해 물 건너 오셨다 ㅋ



실경산수화는 우리 땅, 우리 강산을 실제 보이는 그대로 그린 그림이다.
이것이 조선 후기에 가서 좀 더 남종화법을 가미해 진경산수화로 발전한다.
이번 전시 작품들의 연대가 꽤 다양하다보니 좀 더 포괄적으로(시대성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실경산수화' 로 명칭을 붙인것 같다.
진경산수화의 대표 정선의 작품들도 꽤 많다.

옛 사람들은 경치가 좋은 곳에 이름을 붙이고 시와 그림을 남겨 지극한 아름다움과 추억을 오랫동안 간직하고자 했다.
이번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특별전으로 화가의 시선을 오롯이 담아내 조선시대 실경산수화들을 모았다.
화가가 직접 보고 경험한 실제 경치가 어떻게 그림으로 옮겨졌는지 살펴보는 것은 그림의 본질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일이다.
붓과 종이를 챙겨 길을 떠난 화가는 남다른 시선으로 거대한 산수를 바라보고 이를 새롭게 해석하여 화폭에 담았을 것이다.
조선의 화가들이 표현한 우리 땅 곳곳의 아름다움은 여전히 우리에게 깊은 영감과 감동을 준다.





단발령에서 바라본 금강산
1711년 정선의 작품으로 비단에 그려진 보물1875호이다. 입구부터 좌중을 압도하는 아우라...
작지만 가장 '뭉클'하게 다가오는 훌륭한 프롤로그!!

단발령에서 금강산의 장관을 바라보는 정선 일행이 보인다. 36세 때 처음 금강산을 여행한 정선은 기대감과 설렘을 갖고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단발령으로 올라갔을것이다.
금강산은 중국인들까지 ‘고려국에 가서 금강산을 한번 보았으면' 할 정도로 유명한 산이었다.
정선은 화면을 대담하게 사선으로 나누어 앞쪽에 단발령을 자세히 그리고 멀리 금강산을 표현했다. 중요한 부분을 과장하고 중간은 구름과 안개로 덮어 생략하며 금강산을 바라본 첫 느낌을 강렬하게 담아냈다.

한국의 실경산수화는 고려시대부터 시작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관료의 모임을 그린 계회도, 은거한 선비의 거처를 그린 유거도와 별서도 같은 기록적인 실경산수화가 그려졌다.
각 그림에는 조선 문인 관료들의 사상과 한국만의 독특한 풍수 개념, 지리 정보를 나타내는 지도식 표현 등이 어우러졌다.
특히 선비들의 유람문화는 실경산수화 제작에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경포대도
1557년 금강산과 강원도 지역을 유람한 후 제작한 경포대 그림이다. 현존하는 강원도 지역 실경산수화 가운데 가장 연대가 올라가는 작품으로서 최근 박물관이 기증을 받아 처음으로 공개한  작품이란다!! 우와!!
 <경포대도>는 화면 하단의 죽도, 강문교에서 상단의 경포대와 오대산을 올려다보는 구도로 그렸는데, 이는
18세기 이후 제작된 경포대도의 구도(아래에 누각, 위쪽으로 바다 배치 구도)와 상반된다.
경포대 누각과 호수. 오른쪽 사구와 소나무.
사실 그대로다!





정선이 36세 때 금강산을 처음 여행하고 그린 실경
산수화이다.
정선은 금화현감 이병연(1671~1751), 김창흡(1653~1722) 등과 함께 금강산 일대를 유람하고 열세 폭의 그림과 발문을 남겼다.
초기 작품답게 필치가 조심스럽고, 뾰족하게 표현한 봉우리는정선 특유의 힘찬 수직준을 예고한다.
금강산의 기세를 부감시로 그린 <금강내산총도>와 비교적 좁은 지역과 경물을 묘사한 그림들로 구성되어 있다.
산봉우리와 암석 등에 명칭을 표기하고 길을 뚜렷하게 그린 것은 지도식 표현이다.

이름난 경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당시에 시간적, 경제적으로 쉽지 않았을 것이다. 도화서 화원은 업무에 매여 여러 날 자리를 비우기 어려웠다. 부담은 문인화가도 마찬가지. 이들은 후원자의 유람길에 동행하거나 자신 또는 지인의 지방관 부임을 기회삼아 여행을 떠났다.
화가는 길 위에서 마주친 우리 강산을 현장에서 간략하게 그리는 초본에 그의 즉각적인 반응을 담는다.
풍경의 요점을 잡아내 빠르게 그리고, 틀린 부분은 수정하거나 먹으로 나타낼 수 없는 색채의 이름을 적었다.
또 장소의 이름과 함께 현장에서 겪은 일과 떠오른 감정을 화면에 써 놓기도 했다.



현장에서 그린 스케치를 바탕으로 제작한 금강산 실경산수화. 1797, 정수영.
그가 1799년에 완성한 서화첩 첫 장면 <금강전도>는 구름이 가득 낀 실제 모습을 그리며 화면 윗부분을 여으로 처리하여 뾰족한 봉우리들이 자취를 감춘 파격!!!적인 구도를 보여준다.
이는 금강산의 신비롭고 장엄한 모습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구름 너머를 바라보고 싶은 화가의 시선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화가의 소지품
휴대용 지도, 선추나침반, 종이, 붓, 벼루, 먹, 먹통, 필묵통

여행을 떠나는 화가는 여행용 물품과 함께 그림을 그리기 위한 문방사우 등을 챙겼다. 작은 지도책은 소매에 넣고 다니며 각 지역에 대한 간략한 정보를 얻었다.
나침반은 방위를 알려주는 도구로, 멋스럽게 장식한 나무통에 넣고 부채 끝에 매달아 장식품으로 쓰기도 했다.
종이, 먹, 벼루, 붓을 기본으로 가져가지만 먹을 갈아 쓰기 어려우므로 먹물을 조금 넣는 먹통을 갖고 다녔다.
먹통은 대개 놋쇠로 만들며 먹물이 흘러 새어나오지 않게 안에는 솜을 넣어 썼다. 필묵통은 붓을 꽃는 붓통과 먹을 담는 먹통을 하나로 이어 만든 것이다.









강세황의 부안 유람 여정
전라북도 변산의 명승을 간략하게 그린 두루마리 그림이다. 현존하는 부안의 실경산수화로는 유일하다고 한다.
강세황은 차남 강완 (1739~1775) 이 부안 현감으로
부임하자 이를 계기로 변산 일대를 유람했다.
여행 경로를 따라 우진암, 문현, 실상사 , 용추, 극락암을 그렸고 그림 중간에 기행문을 썼다.
강세황은 용추 폭포에 이르기 위해 가파른 비탈길을
엉금엉금 기어올랐다고 적었는데, 그림에서도 경사가 심한 좁은 길로 표현하였다. 현장에서 느낀 전체적인 인상을 거칠고 단순하게 표현했다.









김홍도의 강원지역 명승 스케치
(경포대, 낙산사, 피금정)
1788년 9월경, 도화서 화원이었던 김홍도와 김응환은 정조(1776~1800)의 명으로 금강산과 강원도 일대의 명승을 그려오기 위해 길을 떠났다.
이 화첩은 여정 중에 그렸거나 그 직후 수정과 선별을 거친 초본을 모은 것으로 추정된다.
붓과 먹을 사용해서 윤곽선 위주로 간략히 그렸으면서도 경물의 특징을 정확하게 포착하였다.
나중의 채색을 염두에 두고 바다 위에 '짙은 푸른색'이라고 지시어를 적어 넣기도 했다.
<경포대>는 화면 앞쪽에 정자나 암석을 그리고 그곳에서 바라본 경치를 그렸는데,
서양화와 유사한 원근법이 적용되어 있다.
화면 중간 위쪽으로 수평선을 그려 확 트인 시야가 느껴진다.



두루마리 화첩 3개.
강세황, 김홍도, 정수영의 작품들.






잘 제작한 좋은 영상 한편!
남한강과 신륵사의 시원한 풍광이 좋다.






정수영의 한강과 임진강 유람 스케치
한강과 임진강을 따라 배로 유람하며 바라본 경치를 사생한 그림이다. 문인화가였던 정수영은 종이를 이어 붙인 긴 두루마리를 가지고 다니며 마음에 드는 경치가 나타날 때마다 사생했던 것으로 보인다.
화가는 잘 알려진 명승 대신 자신의 시선이 머문 장소를 그렸다. 화면 곳곳에 써 넣은 글에서 정수영이 각 장면을 선택한 이유가 드러난다. 서툰 듯 즉흥적인 붓질과 옅은 채색은 여행의 현장감을 생생히 전달해준다.
지도 제작자 정상기의 손자!!!
화가의 개성적인 시선이 보인다.



우리 산수화에 보이는 대표적인 세 가지 시점
심원, 평원, 고원.
실경산수화를 그리는 과정은 풍경사진을 찍는 것과 닮았다. 구도와 초점, 꾸밈 효과를 조선시대나 500년이 지난 지금이나 사람들은 고민한다.



필운대에서의 봄꽃놀이, 정선
필운대는 현재 배화여고가 들어선 인왕산 남쪽 기슭으로, 조선시대에는 한양 최고의 봄나들이 명소였다.
이 그림은 사직동 방면에서 인왕산을 오르며 필운대를 바라본 장면을 그린 것이다.
오른쪽 멀리 푸른색으로 그린 뾰족한 산은 관악산이고, 그 앞의 누각은 숭례문이다.
정선은 가까운 곳에 있는 마을은 안개로 가려 여백을 주는 동시에 멀리 있는 관악산을 화면 안으로 끌어와
근경과 원경의 풍경을 모두 아우르는 시점을 선택하였다.






임진강에서의 뱃놀이, 정선
1742년 10월 보름날 밤, 경기도 관찰사 홍경보(1692-1745)는 임진강에 배를 띄워 유람했다. 당시로부터
660년 전의 그날, 북송의 소식(1037-~1101)이 '후적벽부'를 남겼던 고사를 재현한 이 행사에 정선도 참여했다.
정선은 배를 띄우는 광경을 <우화등선도>에 그리고 도착 장면을 <용연계람도>에 담았다.
가로로 긴 화면에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장면이 펼쳐진다.
정선은 북종화와 남종화의 기법을 자유롭게 혼합하여 실경을 문인화풍으로 표현(진경산수화)하였다. 중국 고전의 장소를 조선 강변으로 옮겨와 재구성한 운치있는 그림이다.



해인사의 부채 그림, 정선
정선은 1721년부터 1726년까지 하양(현재 경상북도 경산시) 현감을 지냈는데, 합천 해인사를 담은 이 부채
그림은 그 무렵에 그린 것이다.
정선은 해인사 주변의 가야산 풍경까지 화면에 담아내기 위해 부감시를 취하였다.



송파나루의 배를 부르는 그림, 김윤겸
송파진은 한양과 경기도 광주를 잇는 번화한 나루였다. 통행과 화물 운송을 감독했던 관아가 강 건너편에 묘사되었고, 그 아래쪽으로 정박한 나룻배들이 그려졌다.
한강 너머 송파진과 대모산을 수평적 시선으로 포착하였다. 나룻배를 기다리는 인물의 시선으로 강 건너편을 바라본 구상이 흥미롭다.






영남지역 명승 그림, 김윤겸, 보물 제1929호
영남 지방은 한양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조선시대 탐승객의 발길이 드물었다. 이 화첩에 그려진 부산과 경상도 일대는 실경 산수화의 대상이 거의 되지 않았던 장소이다.
김윤겸은 1765년경 경상도 진주목에 속한 소촌역감 찰방효을 지낼 때 영남 일대를 탐방한 것으로 추정된다. <태종대>



김응환이 1788년에 정조의 명으로 김홍도와 함께 금강산을 유람한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한 60면의 화첩이다.



금강산 전도, 김응환
김응환이 김홍도를 위해 정선의 <금강전도>를 모방하여 그린 그림이다. 금강산의 전모를 부감시로 종합한 구도와 토산은 미점, 석산은 수직준으로 구분하여 표현한 기법은 정선의 그것과 비슷하다.







강원지역 명승 그림, 김하종
금강산과 관동, 설악산의 명승을 포괄하는 25면의 산수화로 구성된 화첩이다.
규장각의 관료 이광문 (1778~1838)은 춘천 부사가 되자 금강산 유람을 계획하며 24세의 화원 김하종을 데리고 가 실경산수를 그리게 하였다.
김하종은 대대로 화원을 배출한 개성김씨의 후손으로, 작은할아버지는 정조의 명으로 금강산을 그렸던 김응환이다.
김하종은 장소에 어울리는 시점과 구도를 고민하여 화면마다 각기 다른 시선으로 실경을 그렸다.
먼 곳을 옅게 채색하는 대기원근법으로 원근감을 나타냈고, 수묵에 청록색을 더함으로써 생기를 불어넣었다.








김홍도 말년의 수작들. 도담삼봉과 옥순봉 작품.



수원화성에서의 사냥, 김홍도
서장대 밖의 광활한 풍경이 대기원근법으로 잘 묘사되어 있다.






한양 근교의 명승, 심사정
서울 근교의 경치를 그렸지만 어느 곳을 그렸는지는 알기 어렵다. 심사정은 남종문인화풍으로 실경을 재해석하였다.
물기가 많은 푸른 먹과 담황색이 조화를 이룬 화면은 심사정 그림 특유의시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림 옆면에는 강세황의 화평이 남아있다. 실제 경치와 얼마나 닮게 그렸는지를 실경산수의 평가기준으로 내세웠던 강세황도 이 그림의 서정성을 높게 평가하였다.




충청지역 명승 그림, 이방문
우왓!! 의림지다~ 얼마전 아쉬워했던 ㅎㅎㅎ


송도 유람 기념 그림, 강세황
'영통동구'는 거대한 바위 사이로 사람들이 유람하는 전례없는 구도와
황색과 초록색을 섞어 음영을 표현한 참신한 기법이 돋보인다.


아버지를 기리는 인왕산 그림, 조중묵
홍제원 일대에서 바라본 인왕산과 북한산을 대 화면에 포착한 실경산수화이다. 한눈에 담기 어려운 넓은 공간을 수평적 파노라마로 표현하고 주요 지점에 지명을 표기하였다.
박경빈이 부친의 무덤을 인왕산 자락의 명당으로 이장한 후 무덤과 주변 경관을 그리게 한 것으로, 선친의 묘소 위치를 후세에 전하려는 기록적인 성격이 강하다. 조중묵은 아버지의 무덤을 그리고자 한 주문자의 의도와 실제 경치를 적절하게 조화시켜 이처럼 특별한 목적의 병풍을 제작하였다.



석파정, 이한철
(로스엔젤레스에서 온 그림이다ㅎ)
인왕산 북쪽 자락에 위치했던 흥선대원군 이하응(1820-1898)의 별장인 석파정을 그린 병풍이다.
전체 공간은 위에서 내려다본 부감시로 나타내고 건물은 사선 방향의 평행투시도법으로 묘사했다. 먼 곳을
흐릿하게 그리는 대기원근법도 사용하였으나 특정한 위치에서 한눈에 볼 수 있는 경관은 아니다.
도화원인 이한철은 실경을 파노라마처럼 재구성하였다. 19세기에는 문화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궁궐이나
별장 등을 포함한 한양 실경을 대화면에 담은 그림이 유행했다.
http://soslbee.egloos.com/11289996


기록하다 보니
40개의 이미지를 담아 낸 어마어마한 분량의 글이 되어버렸다.
북적거리는 예술의전당보다 힐링하기엔 이 곳이 훨씬 운치있다. 덥고 따분하거든 꼭 가보시길 권한다.
최고의 피서지다.
















덧글

  • 이글루스 알리미 2019/08/27 08:04 # 답글

    안녕하세요, 이글루스입니다.

    회원님의 소중한 포스팅이 08월 27일 줌(http://zum.com) 메인의 [컬처] 영역에 게재되었습니다.

    줌 메인 게재를 축하드리며, zum 메인 페이지 > 뉴스 하단의 컬처탭에 게재된 회원님의 포스팅을 확인해 보세요.

    그럼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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